그전에는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찬이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매주 한 번 이상이 될 정도였다.
영부인이 돌아가신 뒤 외로우셔서 그러셨으리라 짐작한다.
朴大統領은 저녁에 곁들여 飯酒(반주)를 드시곤 했다.
막걸리 아니면 양주였다. 막걸리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고향군에서 만든 일반 막걸리였고, 양주는 시바스 리갈이 고작이었다.
반주를 드시면서 옛 이야기도 자주하셨다. 그러다가 가끔 흥이 나시면
'비탁' 칵테일을 만들어 돌리시곤 했다.
비탁이란 맥주 한 병을 탁주 한 주전자에 섞은 朴大統領 秘藏(비장)의
칵테일이다. 비탁 칵테일을 '調製(조제)'하시는 대통령에게 옆에
앉았던 내가 “조제는 제가 하지요”하니까 “어이, 이 사람,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당신은 配合比率을 모르지 않나
”하시면서 젓갈로 비탁을 휘휘 저으시고는 우리들에게
비탁 칵테일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일제하 대통령이 聞慶(문경)국민학교 선생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젊은 선생들이 ‘기린 비루’를 마시고 싶기는 한데 워낙 박봉이라
마음놓고 마실 형편은 못되었다 한다.
그래서 추렴한 돈으로 비루(맥주) 두어 병을 사 탁주 한 말에
부어 함께 돌려 마시곤 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구미 상모리에 대농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지주 집에서 모내기를 할 때면
온 동네사람이 모두가 품앗이를 했다 한다.
이 때 마을 아이들과 함께 朴대통령도 따라 가곤 했었는데
그 때 지주 집에서 주던 밥과 반찬 맛이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호박 잎에 얹혀진
‘자반고등어’ 한 토막이 그렇게 맛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통령이 마음속에 간직한 가난한
시절에 대한 한과 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상대적으로 안녕하게 성장한 나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나도 비탁 칵테일을 몇번 만들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朴대통령이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살게 된 탓에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배합비율의 비결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인지 알수 없다.
※편집자 註. // 고건 前 총리가 서울특별시장 재직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