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옥들은 한결같이 나즈막한 단층이며
2층으로 된 서민의 집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가옥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동양에서
오로지 그들만이 고안해 낸 온돌이라는 난방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인데,
실제로 아주 훌륭하고 독창적인 것이다.
한국의 집은 땅을 파고 기초 공사를 하는 게 아니라
지면 위에 그냥 짓기 때문에 방바닥이 지면보다 약간 높아
온돌이라고 부르는 공간 사이에
나무나 짚 등을 때어 바닥을 덥히면 방안 전체가 훈훈해진다.
(이탈리아 총영사 까를르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 1904)
한국인들은 거의가 초가집에서 살고 있으며
기와집은 200호 중 한 집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서양보다도 먼저 난방 장치를
활용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방바닥 밑으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더운 연기가 지나면서
충분한 열기를 만들어 내는데 설치 방법도 간단하다.
이렇게 기막힌 난방법을 세계 속에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여행가 듀크로끄)
아궁이 밑에서 때는 불의 열기와 연기가 구들장 사이를 지지면서 방바닥을 덥힌다. 이러한 난방은 겨울철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연료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확실히 권할 만하다. 사용하는 땔감도 나뭇가지나 통나무 등 저렴한 것이며, 이마저도 없다면 잡초, 나뭇잎 등 어느 것이라도 땔감으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서민들은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 사람들보다 따뜻한 집에서 살고 있다.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그런데 온돌방은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 차이가 커서 불이라도 많이 땐 날이면
아랫목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100년 전 우리 나라를 여행했던 서양인들은 '따뜻함'을 훨씬 뛰어넘은
이 '뜨거움' 때문에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들의 기록에는 '사람을 굽는다'라든가 '사람을 지진다'
또는 '사람을 익힌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방안의 '냄새'도 그들에게는 고통이었다.
문이나 창문만 열어 놓지 않으면 오랫동안 보온이 되어
상당히 편리했으나 겨울에 방 안에는 신선한
공기가 너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았다.
코레아 사람들은 실외에서는 옷을 아주 따뜻하게 입었고,
밤에는 펄펄 끓는 방바닥 위에서 빵처럼
구워지는 게 아주 익숙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불편한 잠자리였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자 일어나 문을 열어 젖혔으나
얼마 후 추워서 다시 닫을 수 밖에 없었고, 오분 후에 똑같은 짓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무리 신선한 공기가
많이 들어와도 방안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늘과 오물 냄새는 방 안에 아주 배어 있었다.
이 냄새가 순간적으로 심해질 때가 있어 그럴 때에는 속이 뒤집히려 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의 <코레아 코레아 > 중 )
방은 보통 가로 2.5미터, 세로 1.8미터 가량되는 조그마한 것이다.
그 곳은 열기와 벌레들, 빨래할 더러운 옷가지들과 '메주'라고 하는 간장을
만들기 위해 발효시키는 콩,
그리고 다른 저장물들로 가득 차 있어
누워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은 남겨두고 있다.
밤이면 뜰에 밝혀진 너덜너덜한 등롱과 방의 등잔불이 손으로 더듬거리며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조명을 제공한다.
조랑말의 말린 똥까지 때는 여관의 방은 언제나 과도하게 따뜻하다.
섭씨 33도 정도가 평균 온도이며, 자주 35.5도로 올라간다.
나는 어느 끔찍한 밤을 방문 앞에 앉은 채로 새운
적이 있는데 그때 방안의 온도는 섭씨 39도였다.
지친 몸을 거의 지지다시피 덥혀주는 이 정도의 온도를
한국의 길손들은 아주 좋아한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1897 )
조선 집은 나지막하고 방의 크기는 약 6척 높이에 넓이는 8척 쯤이다.
이 나라에서는 나무를 아껴 써야 하는데도,
밖의 기온이 영하 15∼20도로 수은주가 내려가면
사람들은 방이 뜨끈뜨끈하게 불을 땐다.
온돌방 밑에 네 골을 만들고 그 위에 얇고 넓다란 돌을 덮어서
그 위에 다시 흙을 바르고 맨 위에 기름에 절인 종이를 바른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방바닥은 우리 서양 사람들이 빵을 구어 낼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방바닥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경험해보지 않은 여행자는 까딱하다가는 엉덩이 살을 지지기에 꼭 알맞다.
이 곳 사람들이야 수백 년간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이 뜨거운 방바닥에서도 한편으로 돌아누운 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잔다.
(1902년 애쏜 써드의 『서울 견문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