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대왕릉 40기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선시대 왕릉(王陵)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는 지난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총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조선왕릉군(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조선 왕릉은 조선시대 27명의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망라한 것으로, 한 왕조의 무덤이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로써 한국은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년), 창덕궁, 수원 화성(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에 이어 통산 9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이하 조선일보 만물상(09.6.30) 인용>
[원문 보기]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6월 27일 한국의 조선 왕릉 40기를 일괄해 '세계유산'에 등재토록 했다. 조선 왕릉은 지금도 매년 200만명의 시민이 찾고, 해마다 기일에 맞춰 옛 방식 그대로 제사의식이 거행되는 '살아 있는 역사'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조선 왕릉이 밀집돼 곳은 고양·파주·양주·남양주·화성·김포 등 하나같이 개발 압력이 높은 수도권 일원이다.
▲ "나이 일흔에 능참봉 되니 거동이 한 달에 스물 아홉 번"이란 속담이 있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왕족 능묘(陵墓)를 관리하던 벼슬로, 종9품 미관말직이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하나 맡았더니 생기는 건 없고 바쁘기만 하다는 뜻이다. 어찌하다 능 주변의 큰 나무 하나라도 손상시키면 3년 유배를 가야 했다니 몸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짐작이 간다.
▲ 조선조 22대 정조 임금은 비운에 간 아버지에 대한 효성으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 능을 자주 찾았다. 어느 날 큰비가 쏟아지자 아버지 능이 걱정돼 "지키라고 둔 관헌 놈은 방에서 편히 잠이나 자고 있으렷다." 하며 실상을 파악해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평소 정조의 효심을 알고 있던 능참봉은 봉분이 떠내려갈까 봐 걱정된다면서 빗속에 능을 붙잡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능참봉에게는 큰 상금과 더 높은 벼슬이 내려졌다. 조선의 왕들이 선왕(先王)의 능 관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보여주는 얘기들이다.
▲ 조선왕실은 27대 국왕, 500여년 동안 119개의 능묘를 남겼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 왕세자와 세자빈의 무덤이 있는 곳을 원(園), 기타 왕족의 무덤을 묘(墓)라고 한다.
이 중 왕릉은 42기가 남아 있는데 한 왕조의 왕릉 전체가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 드문 일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선 국장을 치르고 왕릉을 조성하는 모든 과정이 예(禮)를 실천하고 가르치는 통치행위였다. 왕릉은 당대 최고 장인(匠人)들이 동원돼 만든 조선 건축·사상·미의식의 결정체였다.
[사진] 위로부터 정릉(중종의 무덤), 수릉(추존 문조및 신정왕후 조씨의 무덤), 영릉(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무덤), 홍릉(영조비 정성왕후 서씨의 무덤), 건원릉(태조의 무덤).
[조선 역대왕릉 상세보기] ☞ 역대왕릉 보기(1-14대) ☞ 역대왕릉 보기(15-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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