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지킴이

2017하반기 사회공헌활동(10.9)

mose 2017. 10. 9. 22:01

2017하반기 사회공헌활동(10.9)


* 추석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 2017하반기 사회공헌활동 참여자들이 가족들과 주말 함께 잘 보내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문화재관리.보존을 위하여 헌신.봉사하여 보람있는 시간을 갖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한다.

* 각 조장님들 출석점검확인하고, 이어서 대표가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글을 읽어주다. 


* 지난 10월 6일 3조가 답사했던 곳을 1조와 2조가 차례로 대구중부청소년경찰학교 입구에 있는 용(龍)의 장남 비희가 파출소에 자리 잡은 이유를 알아보고, 이어서 대구역출입구에 게시된 순종황제대구방문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으며, 이어서 대구역지하철역 동편에 있는 칠성바위의 유래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 다음은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 대한 송은석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의 글을 참고로하였으며, 龍의 아홉 아들 즉, 비희(贔屭), 이문(螭吻), 포뢰(蒲牢), 폐안(狴犴), 도철(饕餮), 공하(蚣蝦), 애자(睚眦), 산예(狻猊), 초도(椒圖)에 학습하여 유뮬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서 해설사로서의 자질을 갖도록 하였다.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특히 필자처럼 문화관광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래의 이야기를 통해 이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곱씹어 보기로 하자.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이라는 말이 있다. 용이 아홉 아들을 낳았다는 뜻이다. 이 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명나라 사람인 호승지가 지은 진주선이라는 글을 통해서라고 한다. 또한 조선후기 대표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용생구자설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실려 있다. 이 두 글은 각각 용이 아홉 아들을 두었으나 이름이 각기 달랐다또는 용이 아홉 아들을 두었는데 그 좋아하는 바가 각기 달랐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째의 이름은 비희(贔屭)’. 이 녀석은 무거운 것 들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거운 비석을 세울 때 그 받침돌에다 이 녀석을 새겨 넣었다. 세상에서 거북모양의 받침대라는 의미로 귀부라고 칭하는 것이 바로 이 비희다. 일명 패하(覇下)라고도 하는데, 그 모양은 거북이를 닮았고,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하여 돌비석 아래에 있는 귀부가 이것이다.

 

둘째의 이름은 이문(螭吻)’이다. 이 녀석은 항상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와지붕 위나 비석의 머리 부분에 이 녀석을 새겨 넣었다. 일반적으로 비석머리에 조각된 용을 치미(鴟尾)라 하며 이수라고 하는데 이 녀석이 바로 이문이다.

 

셋째의 이름은 포뢰(蒲牢)’라고 한다. 큰 소리로 울기를 좋아해 사람들은 이 녀석을 종 가까이에 두었다. 종을 천장에 매다는 고리를 용뉴라고 하는데 여기에 새겨진 용처럼 생긴 녀석이 바로 포뢰다. 그런데 포뢰는 고래를 유독 무서워해 고래를 만나면 더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지금처럼 나무가 아니라 고래뼈를 사용해 종을 쳤다고 하는데 종소리를 크게 하고자 할 때 포뢰를 종위에 조각하고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을 친다.

 

넷째의 이름은 폐안(狴犴)’이다. 폐안(狴犴)은 일명 헌장(憲章)이라고도 하는데. 모양은 호랑이를 닮았으며, 위력이 있어 옥문(獄門)에 세운다. 위엄과 정의를 상징한다 하여 관아나 감옥의 문 위에 새겼다.

 

다섯째의 이름은 도철(饕餮)’이다. 이 녀석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 주로 그릇이나 제기(祭器)에 새겨 넣었다.

 

여섯째의 이름은 공하(蚣蝦) 공복(蚣蝮)이다. 공복(蚣蝮)은 물을 좋아해 항상 물가에서 물길을 따라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복을 수로나 다리의 기둥에 다 조각했다.

 

일곱째의 이름은 애자(睚眦)’. 이 녀석은 천성이 강직하고 싸우고 죽이기를 좋아해 예로부터 칼의 콧등이나 칼자루에 새겼다. 애자(睚眦)는 입으로 삼키기를 좋아한다. 관우가 사용한 언월도의 용이 바로 이것이다.

 

여덟째의 이름은 산예(狻猊)’. 그 모습이 사자를 닮았다. 불과 연기를 좋아해 사람들은 이 녀석을 향로나 화로에 새겼다. 산예(狻猊)는 또한 앉기를 좋아하는데, 불좌(佛座)의 사자가 바로 이것이다. 일명 금예(金猊)라고도 한다.

 

마지막 아홉째의 이름은 초도(椒圖)’. 이 녀석은 꽉 막힌 성격에 숨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영역에 누가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초도(椒圖)는 초도(椒塗)라고도 하는데 모양이 소라를 닮았다. 닫기를 좋아하여 문고리에 새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도를 대문이나 문고리에 새겼다.


이상이 용생구자설(龍生九子設)’의 대략 내용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비석을 봐 왔다. 하지만 비희와 이문은 알아보지 못했다. 사찰의 범종에서는 종 머리에 달려 있는 용모양의 고리까지는 보았지만 포뢰는 알아보지 못했다. 경찰서 입구에서 무섭게 생긴 동물의 얼굴상은 보았지만 그것이 폐안인지는 미처 몰랐다. 제기에 조각된 도철, 다리나 수로의 공복, 박물관에서 만난 검에 새겨진 서슬퍼런 모습의 애자, 향로에 새겨진 산예 그리고 대문에 조각된 초도까지. 이처럼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수없이 용생구자를 만났지만 그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래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교감하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출석점호 및 학습자료 배부


* 3조 부조장 이수교 회원의 해설 


* 3조 해설사 유재희 회원의 해설

* 3조 활동장면

* 1조 대구중부청소년경찰학교 앞의 龍이 자리잡은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고... 

* 1조 칠성바위에 대하여 알아보다. 대구 칠성바위와 관련한 역사 이야기
  정조(正祖) 19년에 경상감사(慶尙監司)로 부임한 한산인(韓山人) 이태영(李泰永)은 아들 칠형제를 두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하늘에서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찬란한 광채를 내뿜으면서 북문 밖으로 떨어져 빛을 내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 감사는 기침하는 북문 밖으로 나가 보니 어제까지도 없던 일곱 개의 바위가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양을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이감사는 이것이 좋은 징조일 것이란 생각에 그 일곱 개의 바위에다 자기 아들 칠형제의 이름을 새기기로 하였다. 제일 동쪽에 있는 바위에서부터 희갑(羲甲), 희두(羲斗), 희평(羲平), 희승(羲升), 희준(羲準), 희조(羲肇), 희화(羲華 : 初名 羲章)의 순으로 이름을 새겼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일곱 아들이 장성함에 따라 그 아들들의 성품이 각각 자기 이름이 새겨진 바위를 닮아가는 것이었다. 즉 울퉁불퉁하고 험상궂게 생긴 세 개의 바위에 이름이 새겨진 세 아들은 문과(文科)에 올라 출세를 하였다. 그리고 평범한 바위에 그 이름이 새겨진 한 아들은 벼슬을 못하고 평범한 일생을 마쳤다.
  그 후 둘째 아들 희두(羲斗)가 순조(純祖) 2년에 선산부사(善山府使)가 되어 내려갔을 때 선친(先親)의 치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칠성바위 주변에 나무를 심고 중앙에 정자를 세워 의북정(依北亭)이라고 하였다. 그 뒤로 멀고 가까운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 칠성바위 앞에서 부귀다남(富貴多男)을 빌었으며, 칠성동(七星洞)이란 동명(洞名)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의북정(依北亭)은 퇴락하여 허물어지고, 그때 심어진 나무는 아름드리 거목(巨木)이 되었는데, 지난 1976년도에 도시계획으로 벌목되어 큰 나무 뿌리만 예쁘게 조각되어 현재 시민회관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위와 관련하여서는 인명과 관련하여 한산이씨 보책이나 사료들을 살펴보면 모두 근거가 명백한 이야기로 확인되었으며, 지명이나 지역적 거증들도 역사자료들이 뒷받침 하고 있다.

* 1조 최석대 회원이 일찍 나오셔서 감영공원내에 각종 쓰레기 등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고 있다. - 본인 모르게 찍은 것임 



* 1조 대구중부청소년경찰학교 파출소에 자리 잡은 유물 龍에 대하여 알아보고있다.   





* 순종황제대구방문에 대하여




* 궁정열차




* 어가행렬



* 순종황제 어차


* 초기대구역


* 2조


* 1조에 이어 2조가 유물 칠성바위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