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지킴이

(벤쳐) 사공3조 달서 선사유적지를 가다(1)

mose 2019. 4. 24. 22:16

(벤쳐) 사공3조 달서 선사유적공원을 가다(1)

  지난 주 4월2일부터 4월19일까지 월곡역사박물관에서 3주간 대구문화재지킴이 회원으로서 사회공헌활동하였는데 2019년 4월 23일부터는 달서구 월배지역 진천동에 2만년을 이어온 선사유적공원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게 되었다.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조성연혁 - 선사유적공원 관리실에서 퍼옴  


  달서구청에서는 지난 「1997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문화유산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달서구 진천동 470-38번지 일원의 도시계획도로 개설 구간에 위치한 입석(선돌)의 성격과 유래 등에 대하여 학술조사를 실시한 후 도로 개설을 실시키로 하였다.

  그 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문화재 발굴 조사 및 도로구간 시굴 조사를 의뢰하여 1997년 10월 25일부토1998년 1월 26일까지 실시하였다.

  그 결과 입석(선돌)을 중심으로 하여 바깥쪽에 석축기단으로 판단되는 석렬유구가 조사되었으며, 북쪽과 남동쪽 석렬에 접하여 지석묘 5기가 조사 발국되었다. 

  따라서 달서구청에서는 유적지 부지를 매입하고 국가문화재 지정신청, 문화재 보호지정 지구 및 고시 등의 일련의 법적 절차를 이행하고, 선사유적공원 조성 공사를 완료하여 2000년 11월 14일 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이후 사적지 탐방객 및 이웃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선사유적공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2003년 8월 28일부터 2003년 12월 1일까지 관리실을 신축하고, 조경시설을 설치하였다.

  이제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은 우리 향토의 청동기시대 문화유적으로서 역사적 ´ 문화적으로 소중한 터전이 될 것이다.

      2003년 12월 1일  대구시 달서구청장 


  대구문화재지킴이회에서 선사유적공원에 대한 연수자료에 의하면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 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유적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 사적 제411호 진천동 입석이 있다. 2006년 대구역사를 5천년에서 2만년까지 끌어올린 월성동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어, 유구한 대구역사의 깊이를 더해줌과 동시에 달서구 지역이 오래전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좋은 곳이었던 것을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중에서 선사유적공원내에 있는 진천동 입석은 평면이 장방형으로 만들어진 나지막한 석축단 중심에 세워져 있는데 입석 높이는 2.1m, 폭 1.1m, 두께 1.1m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표면에는 성혈性穴이라고 불리는 움푹한 구멍과 동심원 무늬가 새겨져 있다. 석축단은 동서 길이가 약10m, 남북 길이가 약 25m, 높이가 약 50cm에 이르는 큰 규모이다. 석축단 주변에 무늬없는 토기 조각과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입석 주위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인 돌널무덤 5기가 있는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1998.12.23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11호)로 지정, 1997년부터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하여 2000.11.14 일반주민들에게 개방하였다. 선사유적공원은 6,178㎡의 면적에 입석1기, 석관묘 5기, 모형 석관묘 2개소, 모형 입석 1개가 있다. 진천동 입석은 달서구에서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1997.10.25~1998. 1.26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이상은 대구문화재지킴이회에서 사회공헌활동 연수자료로 배부한 내용임)  


  예로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선사인先史人들이 살기 시작한 달서지역은 청동기시대 유물은 물론 대구에서 유일하게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어 대구의 역사를 2만년으로 끌어올린 대구삶터의 시작이 된 곳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지하철1호선 진천역을 무심코 지나쳤는데 막상 선사시대유적지라고 하여 관심을 가지고 3조 조원들이 함께 진천역대합실에 모여서 2번출구에서 450m 거리에 위치한 선사유적공원을 찾았을 때는 마음 가짐이 달라졌다.

  공원주변에는 4층아파트나 빌라들이 아담하게 세워져 있고 지하철 출구에서 전신주 위에 신석기시대의 사람들 모습과 골목을 지나면서 담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서 선사유적공원에 도착하였는데 공원에는 푸른 나무숲속에 유적지가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으며 유적지 주변의 주민들이 휴식공간으로 매우 편리하게 건강관리하며 쾌적한 분위기의 공원에서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마침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거동이 불편하신 어른의 손을 잡고 공원주위를 돌기도 하는 모습도 보았고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설치되어 있어 미을어르신들이 의자에 앉아 쉬는 모습도 보았다.


  김미라 해설사의 안내로 선사유적공원내에 있는 선사유적현황및 지역특성에 대하여 해설을 들었으며, 해설한 내용과 대구광역시 달서구청 문화체육관광과에서 발행한 2만년을 이어온 선사시대로의 여행 소책자를 중심으로 요약 정리해 보았는데 대구문화재지킴이회에서 제공한 사회공헌활동 연수자료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도 있었지만 정리해 보았다.


   지리적 입지와 고고학적 환경

* 대구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남부산지(앞산, 대덕산, 청룡산)와 충적평야

* 1980년대 이후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통해 상인.월성.진천동 지석묘군, 월암.상인 진천동 입석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집중 분포 되어 있었고

* 2003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후 약 120만㎡에 대한 개발로 고고학적 조사가 급증하여 구석기~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조사 발국이 되었다.


  선사유적 현황 및 특성

* 대구 최초 구석기유물 출토로 대구 역사를 2만년으로 끌어올렸으며 2006년 월성동 월드메르디앙아파트 개발지에서 흑요석. 좀 돌날 등 13,184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의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고 하며

*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제411호) 진천동 입석은 1997년 당시 입석과 제단, 석관묘 등이 한자리에서 발견되면서 청동기시대 원시신앙 흔적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 선사시대 유적의 보고寶庫로써 학계의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거지와 같은 생활유규遺構, 지석묘와 석관묘 같은 무덤유구, 진천동 입석 같은 의례유구 등 그 종류와 숫자, 밀집도에서 우리나라 최고라는 특성이 있다.


▲선사유적공원 안내표시판-450m 거리에  

▲300m 거리에 있다고 안내





▲선사시대로 테마거리 원시인 안내판

우리지역의 대표적 역사문화인 선사시대를 지역 시민들과 친근한 방법으로 공유하기 위해 도로의 이정표를 원시인 안내판으로 제작하였다. 원시인이 알려주는 선사공원은 꼭 한번 찾아가고 싶은 장소가 될 듯하다. 

▲구석기 라스코 동굴벽화

▲선사시대로 테마 벽화거리

     ▼시설물 현황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470-38번지

 * 면   적 : 6,178㎡

 * 사업비 : 3,749백만원

 * 시설물 종류 : 입석 1기, 서관묘 5기, 관리실 1동, 모형 입석 1기,  모형 석관묘

    2기, 기타 편리시설 등

▲시설물 배치도 ①입석 立石 ②石列遺構 ③ 石棺墓 1,2,3호기 ④ 石棺墓 4,5호기 ⑤ 모형입석, 모형석관묘 ⑥ 관리실


▲  발굴전 입석 전경 및 주변환경 :

발굴 착수 당시 입석 주변은 공터로 남아 있어서 주민들이 밭으로 경작을 하고 있었다. 유적지 일대는 대구광역시의 남서쪽에 해당하며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진천천변의 충적지대이다. 지형은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낮아지고 있다. 이 일대는 대구광역시 중심을 지나 금호강으로 흘러가는 신천변 일대와 더불어 청동기시대 유적이 밀집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 입석 주변 기단 발굴 장면

  입석을 중심으로 비깥쪽에 축조된 기단은 평면형태가 장방형이다. 석축 기단부는 판석의 좁은 면을 맞추어 겹겹이 가로로 쌓아 올렸는데 제일 아래층은 두께가 어느 정도 일정하게 가공한 것들을 놓아 높이를 맞추었으며 그 위층의 가공석은 아래의 판석 두 개 또는 그 이상에 걸치도록 놓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다. 

  제일 바깥 면석을 보강하기 위하여 그 안쪽으로 지름 20cm 내외의 냇돌을 채웠고 그 사이의 빈틈에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안쪽의 기단 내부는 암적갈색 사질 점토를 채워 성토하였다.  





▲ 입석

  입석은 기단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입석 북면의 편평한 면이 석축 기단의 북쪽 단변과 나란하세 세워져 있었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전체적으로 위가 둥글며 아래는 넓은 다소 부정형한 형태의 높이 2.1m, 너비 1.5m, 두께 1.1m이다.

  북쪽 가공면의 반대쪽은 채석 당시의 박리된 면을 가공하지 않고 밑부분이 불룩 뛰어나온 그대로 두어서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위치하도록 한 듯하다.

북쪽 편평한 면의 우측 상부에 6개의 성혈性穴이, 서쪽면에서는 4개의 나선형문

螺線形文이 시계 방향으로 새겨져 있다.         


▲ 출토 유물

  유물은 무문토기편 다수와 석기 4점, 관옥형 토제품 1점이 출토되었다. 토기의 경우 모두 완형이 아닌 파편들이며 이것들은 기단의 상부에 흩어져 있다가 석축부의 붕괴와 더불어 흘러내린 토기편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 유물은 현재 국가에 귀속되어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토기편 일부가 진천동 출토 유물로 소개. 전시되고 있다.    


토제관옥 土製管玉

박편석기 薄片石器

숫  돌



▲제단과 입석  석관, 석관묘 1호, 2호, 3호 


▲석관 1호

* 1호 지하에 매장 되어 있음 - 입석 유구 북쪽 기단에서 약 2m 떨어진 곳에서 5매의 개석蓋石으로 완전히 덮여 있었다. 남쪽과 북쪽에 각2매씩의 판석을 이용하여 장벽을 세운 다음 동서로 각1매씩의 판석을 장벽 바깥쪽에 붙여 단벽 短壁을  세웠다. 판석의 바깥 부분은 할석割石을 채워 보강하였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석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개석은 중앙 부분에 2매의 판석을 덮은 다음 양쪽에 한 매씩의 판석을 덮었다.

▲석관 2호

* 2호 지하에 매장 되어 있음 - 입석 유구 북쪽 기단에 바짝 붙어서 발견되었으며 3매의 개석으로 덮여 있었다. 남쪽과 북쪽에 각 2매씩의 판석을 이용하여 장벽을 세운 다음 동서로 1매씩의 판석을 장벽 바깥쪽에 붙여 단벽을 세웠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석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개석은 3매의 판석을 나란히 덮었으며 크고 작은 할석으로 봉하였다.

▲석관 3호

* 3호 지하에 매장 되어 있음 - 2호 석관에서 북쪽으로 약 30cm 떨어진 위치에 축조되었다. 2매의 판석을 장벽으로 세운 다음 2매의 판석을 그 사이에 끼워 단벽으로 세웠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뚜껑은 이중으로 덮었는데 먼저 사다리꼴의 판석을 덮고 그 위에 평면 말각장방형의 판석을 덮었다. 


▲ 선사유적지를 돌아보며...


석관묘 4호, 5호


▲석관 4호

 * 4호 지하에 매장 되어 있음 - 석축 기단의 남동쪽 가장 자리에서 약 4.5m 떨어진 위치에 축조되었다. 2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장벽을 세운 다음 각 1매의 판석을

장벽 사이에 끼워 단벽을 세웠다. 개석은 4매의 판석을 나란히 덮고 상부에 다시 4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덮었다. 

 

▲석관 5호

 * 석관 5호 - 지하에 매장 되어 있음.  4호 석관에서 남서쪽으로 액 1.5m 가량 떨어진 위치에 축조되었다. 유구의 대부분이 옛 하천 유로의 변화에 의해 유실되었으며 남아 있는 것은 서쪽 장벽 1매, 북쪽 단벽 1매와 상부 개석 1매이다. 

  







▲석관묘 묘형

이 석관묘石棺墓는 입석立石을 둘러싼 제단의 주변에서 발견된 제2호와 제4호의 석관묘의 뚜껑돌과 석관을 실물크기로 재현해 놓은 것으로

  제2호 석관묘는 장축 110cm, 단축 45cm, 깊이 25cm,  

  제4호 석관묘는 장축 150cm, 단축 25cm, 깊이 25cm의 크기이다.

  석관묘는 묘광墓壙을 파고 판석板石을 깐 후 네 벽에 판석을 세워 공간을 만든 후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뚜껑틀을 덮었다.

  이들 석관묘는 진천동 일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지석묘支石墓와 함께 우리나라 청도기기대靑銅器時代 문화의 연구에 귀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사공3조 김병철 조장을 중심으로 김미라 해설사의 박식한 해설로

선사유적공원에서 2만년전 달서로 떠나는 선사시대의 역사현장에서

많은 것을 새롭게 공부하면서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한 것을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달서 선사유적지의 유적물들을 촬영하여 공원내에 전시한 것 

▲서공3조 김병철 조장의 선사유적지를 둘러 본 후 현황과 특성에 대하여

정리하며 시민들이나 학생들에게 해설할 수 있도록 보람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원 모두 공감하며...      

▲ 김미라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해설을 잘 해 주심에 감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