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제일 많이 다투게 되는 것은 외출할 때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교동을 벗어나 서울 처갓집을 간다던지, 강화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필름 현상을 하기 위해 나갑니다.
나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침운동을 하고 와서 인터넷 신문에 글을 올리고
그리고 서둘러 외출준비를 합니다.
첫배가 강화 창후리 아침 7시30분, 교동 선착장에 도착하면 7시45분, 그러니 집에서
7시20분에는 나서야 합니다. 아내도 분주합니다.
아침밥을 지어서 아이들 먹이고, 은빈이 머리 빗어 묶어주고 등등…
나는 외출준비를 다 마치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겁니다.
그런데 아내가 늘 꾸물거립니다. 빨리 나오라고 크락션을 누릅니다.
아내는 허겁지겁 뛰어 나옵니다. 내가 대뜸 한마디를 합니다.
“뭘, 그렇게 꾸물거려? 아니, 첫배 시간을 알면 서둘러서 준비를 해야지.
매번 늑장을 부린다 말이야. 그래갖고 첫 배 놓치면 어떡해?”
아내는 달다 쓰다 대답이 없습니다. 말은 안 하지만 기분 나쁘다는 것이지요.
내 잔소리가 한 두 마디로 그치면 그냥 넘어가지만 좀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아내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당신 할 것만 다하고 집에서 몸만 쏙 빠져 나오면 되지만,
나는 새벽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거 몰라요? 아침에 세탁기 돌려야지,
밥해서 애들 먹이고 치워야지, 은빈이 옷 입히고 머리 빗겨 묶여서 학교 보내야지,
방도 대충 청소해야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좀 늦었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아내의 반격에 그냥 물러설 내가 아닙니다.
“그러면 다른 때보다 좀 서둘러서 하면 되잖아? 몸은 작은 사람이 움직이는 게 왜
그렇게 굼떠. 여자도 군대를 보내야 하는 건데 매사에 그렇게 꾸물거려서 어디다 써먹어?”
그러면 아내가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단골메뉴입니다.
“좀 느릿느릿 삽시다. 남보고 느릿느릿 살자고 하지 말고 당신부터 솔선수범 해봐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KO패입니다. 그래서 요즘 고단수의 방법을 써서 그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입막음을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좀스럽기는 한 것 같습니다.
건망증 도사가 어떻게 안전벨트는 매번 안 잊어버리고 매는지 몰라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티격태격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새로 발간한 <느릿느릿 이야기>창간호 편집을 하고,
강화에 볼 일이 있어서 아내와 나가기로 했습니다.
오늘부터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입니다. 그런데 넝쿨이 녀석이 개학이 되도록 그 긴
여름방학 동안 숙제를 안 해 아내가 며칠동안 닦달을 해서 오늘 아침까지 간신히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숙제를 몽땅 집에 두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러니 어떡합니까? 갖다 주어야지요. 그래서 아내보고 조금 있다 우리가 나갈 때 학교
들려서 주고 가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아침 9시에 집에서 나가기로 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나는 의례히 외출을 하면 카메라부터 챙깁니다. 그런데 카메라는 있는데 카메라 가방이
어디가고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아내와 풍경사진을 찍으러 함께 나갔다가 돌아와 나는 차에서 디지털 카메라
망원렌즈를 내가 갖고 내리고, 아내보고는 필름카메라와 접사렌즈와 가방을 갖고
내리라고 그랬는데, 아내가 디지털 카메라 가방을 하나를 차에 두고 내렸던 모양입니다.
“내가 어제 분명히 나머지는 당신이 갖고 내리라고 했잖아.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거야?”
“내가 어제 갖고 내린 것 같은데, 가방은 나도 몰라.”
“아니 모를게 따로 있지, 그렇게 건망증 심해서 어떻게 사나 몰라?”
오늘 따라 동네에서 승합차를 쓴다고 해서 아침에 빌려주는 바람에 가방 소재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카메라를 다른 가방에 넣어갖고 승용차를 타고
집을 나섰습니다. 동네를 벗어나 삼선리쯤 와서 넝쿨이 놔두고 간 숙제가 생각났습니다.
“당신, 넝쿨이 숙제는 갖고 왔어?”
“아차! 두고 왔네.”
“아니, 이 사람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차를 홱 돌려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아내가 차에서 내려 황급히 넝쿨이 숙제를 챙겨갖고 다시 창에 올랐습니다.
내가 화가 나서 한 마디도 안하고 가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아내가 꼭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중학교 앞에서 내려 넝쿨이 숙제를 교실에 갖다 주고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다시
차를 타는데, 또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신기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안전벨트를 매는 건 알아?
건망증 도사가 어떻게 안전벨트는 매번 안 잊어버리고 매는지 몰라”
“안 매고 가다 사고 나면 죽는 걸 몰라요?”
“아니 안전벨트 안 매고 가다 사고 당하면
죽는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아?”
둘 다 차안에서 껄껄 웃었습니다.
사실 오늘 강화에서 교역자회의가 있어 부부동반으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월선포선착장에 도착했더니, 배가 부웅하고 떠나 막 뱃머리를 돌리는 중이었습니다.
한발 늦었습니다. 1분만 빨리 왔어도 배를 탈 수 있었는데….
내가 다시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 넝쿨이 과제물만 잊어버리지 말고
제대로 챙겨서 나왔으면
충분히 이 배 탈 수 있었잖아?”
그러나 아내는 돌덩이처럼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불리하다 싶으면 아내의 주특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묵비권입니다.
그걸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