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K, J H

추억의 영상 그때를 아니나요?

mose 2010. 9. 19. 06:41

 

  추억의 영상    그 때를 아시나요?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

(1967년 9월16일)



초만원을 이룬 귀성열차.

(1968년 10월5일)



기관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거의 필사적이다.    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기관차에 매달린 두아낙네의 몸부림이 안타깝다.

(1969년 9월24일)



정원87명의 3등객차 안에  2백30여명씩이나 들어 찬

객차 안은 이젠 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짐 얹는 선반이 인기있는 침대(?)로 변하기도.

(1969년 9월24일)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거쳐 나갔다.

(1969년 9월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엔 사고를 막기위해 4백80여명의

기동경찰관까지 동원, 귀성객들을 정리하느라  대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데모 진압 장면을 방불케했다.

(1969년 9월24일)


 


귀성객이 버스 창문으로 오르는등 고속버스정류장 대혼잡

 1970년 9월14일)



삼륜차까지 동원되어 1인당 1백원에 성묘객을 나르고 있다.

 (1970년 9월15일)

 

 

"싼 것이나 사 입혀야죠" 추석 한산한 시장에 나온 어머니.

(동대문시장. 1962년9월10일)

 

 



60~70년대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 - 설탕세트.



꿈속에 달려간 고향. 지하도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새우잠을 자는 귀성객들.

(서울역앞에서. 1978년 9월16일 새벽2시)



추석 귀성객 (1980년)



추석 귀성객은 돌아오기도 고달프다. 통금이 넘어 14일

새벽 0시20분에 도착한 연무대발 서울행 고속버스

 승객들이 야간통행증을 발급받고 있다.

(1981년 9월14일)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한 여의도광장에는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표가 동나버렸다.

(1982년 9월19일 정오)



짐인지 사람인지...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

(1982년 10월3일)



추석귀성을 위한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행렬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끝이없이 늘어서 있다.

(여의도광장. 1983년 9월10일)



빗속의 귀성예매 대열 / 서울여의도 임시매표소에서

 (1985년 9월15일)



 서울역 광장은 귀성객들이 하루 10여만명이나

몰려들어 민족대이동의 인파로 붐비고 있다.

 (1985년 9월29일)



트럭이면 어떻고, 짐칸이라도 좋으니 고향만 갈 수 있다면

(벽제국도.  1987년 10월7일)



귀성열차표를 사기위해 용산역광장에 몰려든 예매객들.

(1989년 8월27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귀성차량이 몰려 평소보다

2~3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1989년 9월14일)



5일부터 추석귀성 열차표 예매가 시작되자 6일 발매되는

호남선 열차표를 사려는 시민들이 앞자리를 뺏기지 않기위해

텐트와 돗자리에서 새우잠을 자며 날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1992년8월6일)



우리는 자가용으로 고향 간다    (동작대교. 1992년)

 

 

 

 

추석 전날 시골 풍경

(1980년 9월)

 

 

 

한복정장차림으로 추석제례를 올리고 있는 4대째의 일가족.

올해 1백살난 姜敬燮할머니가 시부모의 묘에 절을 할때

80세된 며느리 呂判敎할머니와 손자 손부 증손자 증손부와

문중일가 20여명이 지켜보고 있다.

(慶北 金陵군. 1980년 9월24일)

 

 

 

 


고궁에는 알록달록한 명절옷을 차려입은 해맑은 웃음이 가득찼다.

(경복궁. 1976년 9월11일)

 

 

 

수도 서울의 하늘에 뜬 추석 보름달

(1969년 9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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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동아일보 사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