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님의 "詩하늘 통신"에 올려진 글을 옮겼습니다.
解顔 柳相德 詩人은
65년 공보부 신인문학상, 6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연이어 당선되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문단에 이름을 올린 원로 시조시인이시다. 2002년 대구 오성중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은 뒤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을 즐기면서 시작에 몰두해 왔다. 대구사범 시절부터 배구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등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에 호쾌한 성격, 평소 등산을 열심히 다니면서 누구보다 자기관리를 잘 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는데, 아뿔싸 어제 느닷없는 부음을 접했다.
몇 년 전부터 ‘죽음’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자주 띄긴 했으나, 이렇게나 빨리 갑작스럽게 선생 자신의 일로 닥치리라고는 전혀 예기치 못한 뜻밖의 부고였다. 선생의 작품 ‘그리고 별리(別離)’에서 “심인고등(心印高等) 운동장에서/ 무심히 바라본 벽/ 그것이 영대병원(嶺大病院)/ 영안실/ 경계란 걸/ 한 개비 담배를 물고/ 돌아서서 느꼈다// 문으로 가려놓은/ 이승과 저승의 두께/ 앞발은/ 빛을 밟고/ 뒷발은 죽음에 묻혀/ 이대로 눈을 감는다/ 사는 것이 이런 건가// 악수를 나누면서/ 서로 잔을 주고받는/ 우리의 몸짓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말을/ 감추고 떠나고 나면/ 억새풀만 흔들릴까”
정말 ‘사는 것이 이런 건가’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자각하게 되는 생과 사의 거리, 그 허망의 간극 앞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빼어 물고 싶은 심정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내 ‘뒷발’에도 죽음의 응달이 어른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했지만, ‘저녁노을’과 ‘어스름’은 시나브로 완벽하게 내려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벽 하나 사이로 연결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통 큰 생을 이끄는 지혜가 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다 떠난 뒤에도 오래남아 흔들릴 억새풀의 쓸쓸함을 관조하며.
칠성동은 대구 북구에 위치한 동네로 재래시장인 칠성시장과 옛 야구장을 포함한 시립운동장이 먼저 떠오른다. 최근엔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주거지역으로 부상된 곳이라 사실 노을에 관한 한 특별할 게 없는 동네이다. 그런데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이 당시 대구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10수의 시로 남긴 ‘대구 십경’에는 이 노을에 관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맨 마지막 제10경 ‘침산만조(砧山晩照)는 바로 칠성동과 인접한 침산의 저녁노을을 예찬한 시다. “물은 서쪽으로 흘러 산머리에 다다르고, 푸르른 침산에 맑은 가을빛이 드리우네. 해질녘 바람에 어디서 다듬이소리 급하게 들리는가. 사양에 물든 나그네 시름만 더하네.”
침산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느끼는 나그네의 감흥을 그대로 펼쳐 보인 서정적인 시다. 시상을 띄우는 소재로 강물(지금의 신천), 해질녘 바람, 다듬이소리, 석양, 나그네 시름 등으로 쓸쓸하게 느껴지면서도 노을이 주는 미학을 짧게 잘 드러낸 시어들이다. 류상덕 시인의 ‘칠성동 저녁노을’ 역시 근사치의 느낌으로 전이되어 온다. 그리고 추측컨대 이 무렵의 시인에겐 막 얻은 손자가 있었지 싶은데, 그 혈육에 대한 사랑이 ‘처마에 걸어 놓았다 자즉자즉 밟고 오렴’이란 동시 풍의 표현으로 저릿하게 배어든 것 같다.
시인의 수심은 쓸쓸하지만 그리운 사람을 끈끈하게 그리워하며 살아갈 나날에 대한 마음의 염려와 다스림이 아니었을까. 다정다감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노 시인의 모습이 노을을 배경으로 어른거린다. 그저께 <시와시와>를 부치고 오는 12일 칠성동 ‘시인보호구역’에서 가질 예정인 신년행사를 알릴 겸 문자안부라도 넣을까 어쩔까 딸막딸막하던 차에 듣는 부음이라 더욱 기가 막힌다. 건강하고 안온하게 잘 계신 줄 알았는데, 저승의 노을이 사부작사부작 길게 뻗어 선생의 앞발을 걸고 넘어뜨려 덮칠 줄이야...선생께선 ‘저 빛살이 지려나보다’ 진즉 그 ‘어스름’을 예감했겠으나, 지역원로시인의 부재로 인한 허탈과 상실감은 크게만 보인다. 권순진
故 解顔 柳相德 校長 先生님을 追慕하며
* 故 解顔 柳相德 校長 先生님은 평생을 교단에서 제2세 교육에 헌신하시다가 2002년 8월 31일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庚辰生으로 함께 퇴임하신 분들이 2002년 9월 부터 분기별로 두번째 화요일에 모임을 가지는데 년 4회로 한번은 부부함께 모여 덕담을 나누며 지내왔으며,
2012년 11월 1일에 熹齊 전병문 교장선생님에 이어 두번째 이별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렇게 활달하고 건강하시던 선생님이었기에 우리 경진회원님들 모두 갑작스런 비보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였답니다.
* 하늘나라에서 홀로 남은 부인 홍춘자 여사님과 아들 딸들 손자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리라 믿습니다.
* 우리 경진회를 위하여 2017년 총무로 열심히 헌신봉사하시겠다고 하시던 모습과 음성이 귀에 쟁쟁하네요. 사랑하는 류상덕 교장선생님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해안 류상덕 시인 약력
⊙ 1940년 일본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 1959년 대구 사범학교 졸업
⊙ 1965년 공보부 주최 신인문학상에 「백모란 곁에서」당선
⊙ 196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아침 해안」당선
⊙ 1970년『시조문학』천료
⊙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황국」으로 당선
⊙ 1971년 <소년중앙> 신춘문예에 동시 「봄 아침」당선
⊙ 1979년 경북문학상 수상
⊙ 1990년 한국시조협회상 수상
⊙ 1996년 한국문학상 수상
⊙ 1998년 이호우시조문학상 수상
⊙ 영남시조문학회(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문학경부선 회원
⊙ 시집으로 『백모란 곁에서』,『미호리 가을 외출』외 다수
⊙ 2016년 청도 시조공원에 시비 <강둑에서>가 세워져 있음
⊙ 2017년 1월 4일 영면하심
▼입관후에
▼ 解顔 柳相德 詩人 大邱時調詩人協會葬 永訣式
▼ 대구사범학교 동기생들
▼ 대구파티마병원영안실에서 명복공원으로 출발하며
▼ 대구 북구 국우동산 선영 묘역에 세워진 墓碑 훗날 부인과 합장할 것이랍니다.
▼ 하관후 午餐
▼ 詩人協會 리강룡 장례위원장(좌) 김석근 장례부위원장(우)
▼해안 류상덕 교장 생애
대구시문화상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며...
▼ 경진회원 홍호웅(좌) 리승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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