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지킴이

(벤처)사공3조 두류산金龍寺를 돌아보며

mose 2019. 6. 29. 07:45

(벤처)사공3조 頭流山金龍寺를 돌아보며



2019.6.28(금) 벤처)사공3조 회원들 김병철 조장 안내로 대구두류실내수영장 뒷편에 있는 頭流山金龍寺를 가서 문화재지킴이회원으로서 그리고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으로 살펴보기로하였다.  

                               대구 두류산 금용사

[요약]  고려 중기에 한 부호가 문중의 원찰로 금봉산(두류산)에 절을 짓고, 금봉사(金鳳寺)라 합니다. 1926(병인년)에 김송동 보살님이 지금의 두류실내수영장 별관자리에 대웅전과 요사2동을 창건하였습니다. 1986년 대구에서 개최한 전국체전 때 현 주지 혜선스님이 금용사의 부지가 실내수영장으로 편입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함. 절 이름을 금용사라 한 것은 옛날 천재지변으로 금봉산 봉황이 용으로 화했습니다는 풍수설화를 감안하여 금()자는 옛 금봉사에서 따오고, ()자는 천재지변의 풍수설화에서 딴 것입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 산 198-10번지에 있는 두류산 금용사”  절 입구 계단과 문만이 동쪽으로 약간 치우져 세워져 있는 대문을 통해 스님들께서 수행정진을 하고 계시는 곳, 깨끗한 절집 대웅전 동북쪽에 놓인 삼성각 내부를 둘러보았다.

            금용사 창건유래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글 있어 옮겨본다.

   창건년대 : 고려시대(문헌적 고증은 어려우나 구전되어 오는 전설과 이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와 와당의 생활 흔적 등으로) 이 곳에 전래 된 지명과 유래를 살펴보면 두류산은 한때 금봉산으로 불렸으며 고려중기에 한 부호가 몽고의 관습을 피해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솔권한 문중의 원찰로 절을 짓고 그 이름을 풍수적 지형지세를 따라 金鳳寺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존속하여 오던 절이 조선의 개국과 함께 숭유억불의 정책이 시작되면서 지방 유생 토호들이 절을 헐고 향교를 지으려고 하자 천재지변이 일어나 산이 갈라지고 절터가 못이 되었다고 한다이렇게 없어진 금봉사는 역사의 망각 속에 사라지고 오랜 세월 속에 잊혀져 오다가 이곳 인근에서 불심이 돈독한 김송동(金松東) 보살님이 절을 창건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던 중 성당못 주변에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면 파불조각과 토기 와당 전돌 등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원찰을 세울 것을 발원하여 1926(병인년)에 지금의 두류실내수영장 별관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2동을 창건하였으며 이때 출가하여 본심(本心)스님으로 평생동안 이 도량에서 정진하셨다고 한다.

  절 이름이 금용사라고 한 것은 옛날 천재지변으로 금봉산 봉황이 으로 화했다는 풍수설화를 감안하여 금()자는 옛 금봉사에서 따오고, ()자는 천재지변의 풍수설화에서 따서 오늘에 금룡사의 절 이름이 있게 되었다. 지금의 금룡사는 1986년 대구에서 개최한 전국체전 때 현 주지(慧禪)스님께서 금룡사 부지가 실내수영장으로 편입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현 위치로 이전 중창하셨다.

  금봉산에 금봉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터가 못으로 변했고 세월이 흘러 이 못 주변에 다시 절을 세워 금용사라 칭했는데 최근 들어 수영장이 들어서면서 또 다시 현재의 절집자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봉황이 용으로 바뀌고 절집이 물 때문에 두 번 이사를 했다. 물론 구전되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

  “봉황과 용, 물과 두 번의 이사이 곳 금용사에서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좌청룡, 우백호 하는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자락이 우측에서 내려와 앞쪽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길게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다. 풍수에선 이런 터를 남자와는 인연이 없는 터로 본다. 여자들에게 발복發福을 주는 터라는 점이다. 그래서 금용사는 비구니 사찰인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두류산으로 부르고 있지만 과거에는 지금의 성당못과 문화예술회관쪽의 산을 금봉산이라 칭했고 우방랜드쪽의 산을 두류산이라 불렀다 실제로 이 곳 금봉산은 금용사 유래에서도 나왔지만 명당으로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조선조 이 곳은 명문세가였던 채씨와 남씨가문의 세거지였는데 이 지역에 왕기王氣가 서렸다하여 4번 독산 쪽에 철퇴를 가해 왕기를 끊었다고 전해지고 있디. 성당동聖堂洞이란 이름도 성스러운 지역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두류산은 용머리에 해당하는 우방랜드 쪽으로 대로가 나면서 용맥이 끊어진 것도 서러운데 용머리에 해당하는 용두에다 우방타워까지 박아두었으니. 금용사는 바로 이 두 지점의 사이에 앉아 있는 셈이다. 독산쪽은 철퇴를 맞아 뻗고, 용두봉쪽은 타워라는 철심이 박혀 뻗고 이 손상된 두 지역의 가운데 지점에 앉아 있는 금용사. 봉황은 이 곳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용은 있다. 용은 水神이다. 금봉사에서 봉자가 빠지고 용자가 들어간 것은 바로 두 번이나 물(, 수영장) 때문에 이사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주문이 도심속에 있는 산사. "두류산 금용사" 라는 현판이 눈에 돋보인다. 보통의 일주문에는 대문이 없는데 금용사의 일주문에는 대문이 달려 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6층 석탑이 았고 바로 뒤에 금용사 대웅전이 있다. 보통의 사찰에는 대웅전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지만 이곳은 일주문. , 대웅전 순으로 바로 붙어 있다.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전경 너무나도 좋다. 금용사는 1931년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계속적인 보수 및 신설로 고풍스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릴 때도 바람이 불어도 무더운 여름날에도 시민들에게 가장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두류공원. 그 공원내에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가벼운 산책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금용사 같은 사찰도 드물 것이다. 금용사가 바로 그런 곳이다


頭流山金龍寺

頭流山金龍寺




頭流山金龍寺 일주문


▲김병철 조장이 경내를 돌아본 후 잠시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 










頭流山金龍寺 6층 석탑의 사면






불신보편십방중

불신이 널리 시방 세계에 두루하사

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와 한가지네

광대원운항부진

넓고크신원력 구름처럼 다함없고

왕양각해묘난중

광대한 깨달음의 바다도 끝이 없네

▲대웅전 전면 네 기둥의 글귀 ...



頭流山金龍寺 대웅전에서 기도하는 신도들



頭流山金龍寺에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앞산



頭流山金龍寺 대웅전 앞 설화초


일주문을 들어서면 잘 가꾸어 놓은 소나무  

  

頭流山金龍寺에서 안두환 회원    



대웅전 앞 우측에 있는 두 나무의 모습 ...


 금용사를 둘러보고 내려가며 무엇을 가슴에 안고 갈가요? 


 두류산금용사 일주문을 바라보며 


頭流山金龍寺를 둘러보고 가는 길에 잠시 쉬어볼가? 



찬수형 휴개공건을 배경으로

▲ 시민들이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본다



▲금용사를 둘러본 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휴식하며...